2017/11/12(일) -세월도 가고 우리도 가는 것- (3483)

 

‘세월’이라는 말은 ‘시간’이라는 말과 다를 바 없겠지만 듣기에는 매우 낭만적입니다. 옛날 글에는 ‘시간’이라는 낱말이 쓰이지 않았으니 ‘세월’ 하면 옛날이 그리워지는 지도 모릅니다. 중국 송대의 대학자 주희는 ‘학문을 권하는 글’에서 ‘일월서의 세불아연’(日月逝矣 歲不我延) - “해와 달은 가는 것, 세월이 나를 기다려주지 않아"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희가 던진 기막힌 한 마디는 ‘오호노의 시수지건’(鳴呼老矣 是誰之愆) - “아, 나 이제 늙었으니 이것이 모두 누구의 허물인고”입니다. 늙은 몸이 노년을 살아간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우면 “이것이 모두 누구의 허물인고”라는 말이 튀어나왔겠습니까. 탓할 수 있는 대상이 꼭 하나 있다면 그것은 세월일 뿐, 누구도 탓할 수 없는 것이 노인의 심경입니다.

대학자 주희는 학문하는 길은 멀고 또 멀어 대성(大成)의 앞날이 아득하기만 한데 팔다리에 힘은 빠지고 동작이 느려진 것뿐이 아니라 눈도 잘 안 보이고 귀도 잘 들리지 않는 자신의 노경을 처절하게 한탄한 것입니다. ‘소년행락’(少年行樂)이 그리워서 비명을 지른 주희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런 그리움은 전혀 없었을 것입니다.

젊은 사람보다는 늙은 사람이 ‘죽음’을 더 많이 생각하게 마련입니다. 누구에나 그 날은 하루하루 다가오는 것이지만 노인에게 있어서는 더욱 절실한 것입니다. 이 관문을 어떻게 통과하느냐 하는 문제는 이미 살아온 기나긴 세월보다도 백배는 더 심각한 과제입니다.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마음 놓고 떠나기만 하면 된다”고 알려주지만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김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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