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10(금) -어언간에 여름 가고- (3481)

 

일제 때 우리가 감격하여 부르던 노래 중 하나가 <봉선화>라는 처량한 가사의 노래였습니다. 젊었던 우리들은 이 노래에 민족의 혼이 스며 있다고 믿었습니다.

울 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길고긴 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 필 적에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

어언간에 여름 가고 가을바람 솔솔 불어
아름다운 꽃송이를 모질게도 침노하니
낙화로다 늙어졌다 네 모양이 처량하다

북풍한설 찬바람에 네 형체가 없어져도
평화로운 꿈을 꾸는 너의 혼은 예 있으니
화창스런 봄바람에 환생키를 바라노라

일제시대에도 여름은 있었고 봉선화는 더 많이 피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그 꽃이 우리들에게 매우 친근한 꽃이었지만 지금은 서양에서 들여온 화려한 꽃들 때문에 옛날의 그 사랑을 누리지는 못하지만 노래는 변치 않고 살아 있습니다.

오늘 아침 그 날들을 회상하면서 지휘자 김생려(金生麗)와 소프라노 김천애(金天愛)가 생각났습니다. 해방되고도 김천애는 이 노래를 자주 불렀습니다. 그의 노래도 좋았지만 두 사람의 인물이 뛰어나게 잘 생겼었습니다. 두 분의 사이가, 매우 좋은 의미에서, 가깝다는 소문이 자자하여, 두 분은 때때로 민망하였을 것입니다. 잘 생겼던 이 소프라노는 한평생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았답니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이해를 잘 못할 것만 같습니다.

"어언간에 여름 가고 가을바람 솔솔 불어 아름다운 꽃송이를 모질게도 침노하니 낙화로다 늙어졌다 네 모양이 처량하다." 누구를 위해 이 노래는 있는가? 거울에 비친 내 모양을 유심히 들여다보면서 '인생무상(人生無常)'을 또다시 되새겨 봅니다.

김동길
www.kimdonggi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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