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05(일) -우리말을 사랑한다- (3476)

 

말하기 좋다하여 남의 말 말을 것이
남의 말 내 하면 남도 내 말 하는 것이
말로써 말이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나는 어려서 일본 총독부의 문교정책에 따라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일본말이 아름답다는 주입식 교육을 받고 자라는 가운데, 마쯔오 바쇼(松尾芭蕉)라는 방랑시인의 ‘하이꾸’(俳句)가 최고라는 말만 듣고 그 시절을 보냈습니다. 일제 때였지만 우리나라에도 ‘시조놀이’가 있어 시조 백 수를 다 암송했지만 뜻은 전혀 모르고 읊기만 하였습니다. 해방이 되고 나서 다시 배우는 가운데 그 뜻을 헤아리게 되었습니다.

8‧15 뒤에는 한문이나 국문을 공부하라고 일러주는 선배나 스승이 없어서 영문학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유학을 당나라나 왜국으로 가지 않고 미국으로 갔던 것도 그 시대의 생각이 그러했기 때문입니다.

‘말하기 좋다하여’로 시작되는 이 시조는 작자가 누군지 모르지만 우리말 구사의 천재라는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우리말이 영어나 일어보다는 아름답고 재치 있는 언어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언어의 구사가 음악적일 뿐 아니라 이 짧은 글에 담긴 도덕적 교훈이 또한 엄청납니다. 영어에 숙달한 한국인이 우리 시조 100수를 영어로 능숙하게 옮겨주면 그 책은 능히 영어권의 독자들을 감동시킬 겁니다. 시의 번역은 새로운 창작이라는 말도 있지만 결코 불가능한 꿈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내가 노년에 무척 즐기는 시조 한 수는 목은 이색이 어지러운 고려 말의 세태를 바라보면서 읊은 바로 이 시조입니다.

백설이 잦아진 골에 구름이 머흐레라
반가운 매화는 어나 곳에 피었는고
석양에 홀로 서서 갈 곳 몰라 하노라

이색은 90이 다 된 이 한국 노인이 오늘의 심정을 어쩌면 그리도 절묘하게 묘사했을까 감탄하여 마지않습니다. 나보다 꼭 600년 전인 1328년에 태어난 대표적인 고려조의 선비 이색이여! 한국말을 쓰는 한국인으로 태어난 사실을 나는 매우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김동길
www.kimdonggi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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