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22(일) -여섯시면 어두워지는데- (3462)

 

원시시대를 살아야 했던 조상들을 생각하며 나도 짧아지는 해를 원망합니다. 저녁 8시가 되어도 훤하게 밝던 여름 한 철이 다 가고 6시만 되어도 컴컴해지는 추운 겨울이 저 만큼 다가왔습니다. 더워서 못 살겠다던 것이 어제만 같은데 혹독한 추위에 떨어야 할 겨울날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습니다.

해방이 되던 1945년 내 나이 열여덟이었으니까 나의 청춘의 문을 열고 꽃밭에 들어서기까지 나는 산간벽지인 맹산에서 태어나 수은주가 영하 25도를 가리키던 12월 25일의 크리스마스를 여러 번 지내면서 감수성이 예민하던 젊은 날들을 보냈기 때문에 추위에 대하여는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38선을 넘어 월남한 1946년과 그 이듬해 겨울에는 한강도 꽁꽁 얼어붙어 거기서 전국 중•고등학교 빙상대회가 열렸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선수들이 유니폼을 구하기도 어려운 세월이어서 어떤 선수는 겨울에 입는 내복(내의)을 입고 출전하여, 구경 나온 우리들을 웃기기도 하였습니다.

조국 근대화가 추진되었기 때문인지 서울의 겨울이 70년 전처럼 혹독하지는 않습니다. 고향을 등지고 떠난 뒤 한 번도 가보지 못했지만 그 곳의 추위도 많이 느긋해졌을 겁니다. 모르긴 하지만 ‘크리스마스 = 영화 25도’의 추위는 자취를 감추었을 듯합니다.

이 나이가 되기까지 오래 살아보니 한 뼘의 지혜가 생겼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영국 시인 P. B. Shelley가 <서풍의 노래>에서 읊은 그 마지막 한 마디입니다.

예언의 나팔이여! 오 바람이여,
겨울이 오면, 봄이 어찌 멀었으리오?
The trumpet of a prophecy! O wind,
If winter comes, can spring be far behind?

나는 올해 동지(冬至)가, 해가 가장 짧은 그 날이, 12월 22일에 온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 날이 날마다 다가오는 사실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 그리고 겁이 없는가? 그 다음 날부터 해가 조금씩 길어진다는 사실을 또한 알기 때문에! 봄은 결코 멀지 않습니다.

김동길
www.kimdonggi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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