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20(금) -왕검성에 달이 뜨면- (3460)

 

일전에 시내 프레지던트 호텔 31층에서 평양고보 총동문회 총회가 모였는데 100여 명의 노인들이 참가하였습니다. 내가 34회 졸업인데 내 뒤로는 40회까지가 있을 뿐이니 막내들이 다 80대 중반에는 다다랐을 것입니다. 평양고보는 한 때 총독부가 평양2중으로 격하시켰으나 동문들이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1938년이나 39년 경, 내가 살던 동네에 장님 한 분이 나타났는데 당시 평고에 다니던 형들이 그 장님을 초대하여 몇 번 강의를 들었습니다. 나는 국민 학교 학생이었지만 형들 틈에 끼어서 그 분의 말을 귀담아 들었습니다. 물론 강론의 내용을 잘 알 수는 없었지만.

그 장님은 ‘사상범’이었는데 형기를 마치고 출소는 했지만 공개적으로 강의를 할 입장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당시의 ‘사상범’은 독립운동을 하다가 붙잡혀간 사람이라고 우리는 인식하고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때 어린 내가 뜻도 모르고 암송했던 시 한 수가 ‘왕검성(王險城)에 달이 뜨면’이라는, 나로서는 매우 어려운 시였으나, 나이 90이 된 오늘도 기억하고 있는 시입니다. 어려운 낱말들의 뜻은 내가 자라면서 깨달아 알게 되었고, <천자문>을 암기는 해도 뜻은 모르는 그런 처지와 비슷하였습니다.

왕검성에 달이 뜨면 옛날이 그리워라
영명사(永明寺) 우는 종은 무상(無常)을 말합니다
흥망성쇠(興亡盛衰) 그지없다 낙랑(樂浪)의 옛자취
만고풍상(萬古風霜) 비바람에 사라져 버렸네
패수(浿水)야 푸른 물에 이 천년 꿈이 자고
용악산(龍岳山) 봉화불도 꺼진 지 오랩니다
능라도 버들 사이 정든 자취 간 곳 없고
금수산 오르나니 흰 옷도 드물어라
우뚝 솟은 모란봉도 옛 모양 아니어든
흐르는 백운탄(白雲灘)이라 옛 태돈들 있으랴
단군전에 두견 울고 기자묘에 밤비 오면
옛날도 그리워라 추억도 쓰립니다

왕검성은 고조선의 도읍지인 평양을 가리키는 말이고 패수는 청천강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우리가 알기에는 평양 도성에 흐르는 대동강을 일컫는 것입니다. 단군전도 기자묘도 어려서 찾아보던 내 고향의 유적지입니다. 내가 이 시를 암송하면 모든 나이 든 동문들이 심각한 표정을 짓게 됩니다.

김동길
www.kimdonggi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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