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03(화) -실패한 인생이긴 하지만- (3443)

 

나이가 90이 되기까지 사는 사람도 많지는 않습니다. 아직도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80밖에 되지 않는데 극소수의 사람들이 90세까지 또는 100세까지 살 수 있는 건강을 타고나는 겁니다. 부모님을 포함해서 나의 조상들 중에는 80을 넘은 분이 안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90을 넘긴 사람은 한 분도 안 계셨습니다.

나의 스승이시던 백낙준 박사와 함석헌 선생께서도 90이 넘도록 살지는 못하셨습니다. 조상들보다도 스승들보다도 더 오래 내가 살고 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어제가 내 생일이어서 우리 집 마당에 천막을 치고 그 천막 밑에서 300명이 넘는 손님들이 빈대떡과 냉면으로 서로 담소하며 즐거운 한 때를 보냈습니다. 아무런 관직도 없는 한 노인의 생일잔치에 300명이나 모인다는 것은 내가 생각하기에도 놀라운 일입니다. 하객들 중에는 교수나 장관을 지낸 사람들도 있고 별을 몇 개씩 달고 군무에 종사한 이들도 있고 사업으로 이름을 떨친 이들도 있지만 찾아온 사람들이 모두 정직하고 선량하다는 사실 또한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아무런 큰일도 해보지 못하고 이렇게 늙었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하객들의 틈에서 담소를 나누면서 나의 90년 인생이 허무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와 가까운 이들은 크게 사회적으로 성공은 못하였어도 양심 하나를 지키고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내가 얼마나 더 이 땅 위에 살아 있을 것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미국의 문인 Howells의 말대로 “영원과 나는 하나이다”(Eternity and I are one)라고 믿는 나의 노년이 그렇게 비참하지만은 않습니다. 그래서 90 생일을 맞은 내가 가까운 주변 사람들에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격려할 자신이 생기는 겁니다.

김동길
www.kimdonggi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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